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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인생론
2023.12.09 14:54

벤자민 프랭클린의 교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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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프랭클린의 교회관
| 현대문 | 原  文 |   성서조선 第 10 號 (1929年 10月)
 

미합중국의 독립 역사를 읽고서도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고층 건축물 위에 찬연히 솟은 피뢰침들을 보는 사람들은 ‘프랭클린의 종이 연’을 떠올리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프랭클린은 가을바람에 종이 연을 띄우는 사랑스런 어린 소년으로만 우리의 뇌리에 기억되기 쉽지만 그는 공중전기의 증명, 프랭클린 난로, 그 밖의 여러 가지 과학적 발명과 응용 등에도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에게는 특수한 분야보다도 그의 일상생활 속에 평범하고도 비범한 그 무엇이 있었다.    특히 상식(common sense)이 원만하게 발달된 장부였다.    지혜가 종횡무진 하면서도 정곡을 그르치지 않는 판단력으로써 사물을 대하였다.

가정에 있어서는 홈(home) 같은 홈을 이루었고, 마을에 나가서는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았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속 마음을 주고 받는 벗이 되었고, 시정에 참여하여 필라델피아시(市)의 기반을 닦았으며, 필라델피아 대학의 설립자가 되었고, 국정에 참여해서는 미국 정치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되었음은 오로지 그의 건실한 상식의 소산이었다.


그의 교회에 대한 의견은 결코 과학자라는 입장에서 속 좁음과 불경건을 나타냄도 아니었고, 정치가의 경박함을 드러냄도 아니었고, 물론 종교가로서의 편견과 고집을 주장함도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건실한 한 시민으로서 투명한 상식의 판단을 기술할 뿐이었다.

교회주의자들은 영원히 수긍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치우치지 않은 보통 사람에게는 명명백백한 까닭이다.    프랭클린이 어떻게 교회를 보았는지 그의 자서전 중의 일부를 보도록 한다.

“ …… 그러나 그(목사)의 설교는 흔히 자기 교파 독특한 교리의 논쟁이거나 설명이었다.    그래서 나에는 매우 건조, 무미, 무익한 것이었다.    …… 도덕적 원칙이라고는 하나도 말하지 않고, 행하지도 않고, 장려하지도 않는다. 저들의 속셈은 나를 선한 시민으로 만들기 보다는 차라리 장로교인으로 만들려는 것 같이 보였다. 나중에 저는 성서를 들고 빌립보서 4장 8절을 찾았다.”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나는 상상하였다.    이러한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한다면 수많은 교훈을 받을 수 있겠다고.     그러나 목사는 다음과 같은 5개 조목만으로 국한하여 버렸다.”

    1. 안식일을 성수하라.
    2. 성서를 열심히 읽으라.
    3. 의무적으로 모임에 출석하라.
    4. 성찬예식에 참석하라.
    5. 목사에게 상당한 경의를 표하라.

“이런 것들이 모두 선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5개 조목에는 그 성서 말씀에서 내가 예상하고 기대하였던 종류의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므로 나는 다시 저희들과 모이기에 절망하였고 혐오가 생겼다.    그 이후로 공회의 설교에는 다시는 참석하지 않았다.”    (자서전에서)


과연 목사 또는 교역자라는 이름의 특수한 인형(人形)들이 아니고는 빌립보서 4장 8절에서 위와 같은 5개 조목의 해석은 도저히 얻지 못할 것이다.    프랭클린은 교회주의자의 그 무식과 그 불신과 그 허위에 못 견디어 드디어 교회에 실망하고 혐오하게 되었다 한다.


오늘날 조선 교회와 그 교역자들은 과연 어떠한가?    그들은 소위 성령(?)이 감동하심인지 위와 같은 비범한 연역법적 해석을 익숙하게 행하고 있다.    참석한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기적(?)을 행사하는 것도 동서와 고금이 다르지 아니하니 우리도 종종 이러한 종류의 설교 듣기를 혐오하였다.

그들의 지혜가 많음을 서로 겨룰진대 루터에게 믿음을 재촉한 로마서 1장 17장을 읽고서도 농촌진흥책에 대하여 힘차고 거침없이 수천 마디를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또 한 번 역량을 다한다면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를 다시 태어나게 한 로마서 13장 12절을 낭독하고서 여자들의 단발론(斷髮論)에 대하여 수만 마디의 열변을 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목사의 지위에 대해서나 교회의 부흥, 혹은 자기 소속 교파의 교리에 대한 고집에 관련된 문제라면 창세기 처음 절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절까지 이용하지 못할 구절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제자는 스승보다 나을 수 없다.    미국에 유학하거나 미국이 파견한 선교사에게 학습한 오늘날 조선 교역자 및 청년 회원들이 그 스승보다 뛰어나지 못함이 당연하며 오히려 그 스승을 잘 모방하였으니 칭찬할만한 일이라고나 할까?


우리도 역시 프랭클린처럼 처음부터 교회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될 수 있으면 출석을 계속하려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 있는 장로교도 혹은 감리교파 사람이 되기보다는 선한 조선 시민이 되기를 더 원한다.    고집과 편견에 안도하기 보다는 솔직한 학도적(學徒的) 불안(不安)을 탐한다.

인형이 되기보다는 살아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사람이 쌓은 높은 교회당 건축물보다는 계곡에 아무렇지도 않게 핀 한 송이의 백합화에서 무한한 생명의 경이를 느끼고자 한다.

성서의 말씀을 함부로 인용하여다가 자기들의 교리와 의식을 건축하려는 노력보다는 말씀 속에 포함된 있는 그대로의 생명 샘에서 진리를 마시고자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프랭클린과 같이 부득이 교회 참석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카알라일(Thomas Carlyle),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 밀턴(John Milton), 크롬웰(Oliver Cromwell), 테니슨(Alfred Tennyson), 단테(Alighieri Dante) 등과 같이 교회와 교파에서 벗어난 사람이 되고자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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